‘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어느덧 기쁨의 날이 찾아오리니 현재는 슬픈 것 그러나 마음만은 미래를 사는 것 모든 것은 순간이고 사라져 간다 그리고 지나가 버린 모든 것은 그리워진다.’
푸시킨의 유명한 글귀입니다.
삶이 우리를 속인다. 무슨 말일까요? 사기를 당했다는 말일까요? 배신을 당했다는 말일까요? 그것이 아니라 시인이 바라본 인생의 중요한 원칙은 언제나 삶은 내가 바라는 모습과 반대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행복하고 싶지 않은 삶은 없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곧 삶이 우리를 속이는 것과 같다는 것이죠. 내 기대가 무너지는 곳, 내 바램이 쓸쓸히 퇴장하는 곳, 그것이 오늘이라는 현실이라는 무대입니다. 그러나 그 현실과 마주하더라도 슬퍼하거나 화를 내지 말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슬퍼하거나 노여워한다고 해서 이 현실이 물러가 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슬프지만 아프지만 힘들지만 오늘을 참고 내일을 바라보며 미래를 살아내라고 시인은 권면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뒤를 돌아보니 그 아팠던 시간들이 마치 하룻밤의 꿈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마는 ‘순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또 말합니다.
‘그러나 지나갔다고 잊혀진 것은 아니다. 지나가 버린 그 아픈 순간들은 그리움으로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삶은 아픔의 연속이자 반복입니다.
그 지독한 반복이 우리를 오늘도 무너지게 만듭니다. 그렇게 반복되는 슬픔에 무너졌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 절대로 예전 방식으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도 여러 번 했습니다. 자신 안의 낮은 자존감과 그것을 이용하는 사탄의 계략과 싸우고 주님 뜻대로 살겠노라고, 말과 행동이 다른 비겁한 짓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했습니다. 그 신념과 결단 속에 거짓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망각한 것,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고 해서 꼭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 빈약하고 나약하고 메마른 의지 위에 은혜가 비처럼 내립니다. 비로소 약할 때 강함이 되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질그릇이 보배를 품고 비로서 존재의 이유를 발견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영롱한 눈빛에서 새어 나오는 사랑의 초대에 응답하는 순간, 그 지독한 슬픔과 후회의 반복들이 비로소 작별인사를 건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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